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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alk

역지사지

Toclear 2014.07.02 17:16

다른 사람에 입장에 서서 생각한다. 참 좋은 말이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중학생, 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초심을 잃곤 한다. 애들은 왜 이렇게 공부에 관심이 없나부터 시작해서, 왜 이것도 못 알아듣는 건지, 더 나아가서 다들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 생각마저 할 때쯤에는 자기혐오로 끝나곤 한다. 더 재미있고 더 유익한 수업을 할 생각을 해야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모든 원인을 학생들에서 찾으려 시간을 낭비하곤 한다. 다행히도 늘 잘난 것 같은 선생님의 입장에 항상 있지는 않다. 

수요일 3시 30분이 되면 피아노를 배우러 3층에 있는 수학학원 밑에 2층 피아노 학원 수강생이 된다. 피아노 선생님은 연세가 60세 되는 기초 한국어가 되는 러시아 분이시고 짧은 인생이었지만 여태까지 가까이서 바라본 가장 위대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이제 강제적으로 처지가 바뀌게 되어 선생님은 학생이 되어서 피아노 앞에서 몸부림치며 내 수업시간을 반성하게 된다. 그 잘났던 수학 선생님도 피아노 앞에서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잊고,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은 또 틀리고, 연습은 게을리 해왔다. 하스스톤을 조금만 하고 피아노를 더 연습해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농땡이로 일주일을 보내고 맞이하는 수요일 오후는 언제나 부끄럼뿐이다. 안나샘은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기 때문에 더욱더 죄책감은 커진다. 

이윽고 레슨이 끝난 수요일 이후 내 강의는 친절해진다. 애들은 이 이유를 모르겠지. 그냥 미친 수학자의 변덕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항상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금요일쯤이면 다시 부족한 학생들에게 분노 폭발하고, 주말을 게을리 보내고 월요일과 화요일 벼락치기로 레슨준비를 하고 수요일에 반성하고 이런 식으로 일주일이 굴러가는 것 같다. 그동안 디지털 피아노 10개월 할부가 끝난 사실이 시간은 성실하게 흐르고 있다는 반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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